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곤(李榮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75448
- 전몰일자 : 19520620
공훈사항
이영곤 일병은 1932년 8월 25일 경상북도 영천군 화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2월 19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제9사단은 1951년 10월 5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한편, 유엔군과 공산군은 1951년 11월 27일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연대는 1952년 1월 11일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회산(343고지)을 공격했다. 이 고지를 점령한 중공군은 견고한 토치카를 중심으로 엄폐호와 교통호를 구축하여 아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연대는 점차 견고해지는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정을 입수하고자 공격을 감행했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철수했다.
연대는 1월 30일 아군의 기동과 전술상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고,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신회산 인근의 감제고지인 252고지를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이후 연대는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적정파악 및 포로획득을 위한 전투정찰과 적의 소규모 공격과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수색·매복작전을 지속했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전선에 배치됨에 따라 전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동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이 일병은 6월 20일 전투정찰작전 중에 적의 습격을 받자,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과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4판-6면-2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ㅅ-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