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관(李英官)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122

공훈사항

이영관 경사는 1925년 4월 28일 부산시 서구 괴정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3월 31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경남도경 울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부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에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할 것과, 전투경찰대를 편성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한 후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울산경찰은 울산-경주, 울산-부산을 잇는 도로 경비, 울산의 주요 시설에 대한 경비,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했다. 전쟁 발발 후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에는 2~10명의 소규모 공비들이 출몰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와 출몰횟수가 증가했다. 이 경사는 경남 비상경비사령부의 지시에 의거 일부 병력과 함께 경남경찰대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경사가 소속된 경남경찰대는 하동지서 병력과 함께 하동 탈환작전(1950.7.27.)을 실시한 후 밀양에 투입(8.14)되어 공비 섬멸작전을 수행했다. 이어서 경남경찰대는 8월 하순에 진동리를 방어하던 군경부대가 적의 공세에 밀려 진동리로부터 철수하자 진동리지구를 방어하기 위해 진동리에 투입되어 전남·전북 전투경찰대와 함께 진동리지구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도주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들은 지리산과 태백산맥 일대 산악으로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한편, 산청에서는 북한군이 북상한 뒤 1,000여 명의 공비들이 남아 지역 군·경 부대를 습격하며, 민가에 출현하여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11월 10일, 경남경찰부대와 제18전경대대, 그리고 함양경찰이 합동으로 잔적소탕작전을 공비들은 큰 저항 없이 11월 15일 함양·장수 방면으로 퇴각했다.
이 경사는 작전이 끝난 후 울산으로 복귀하여 피난민 구호와 통제, 주요 시설, 항만 경비, 오열 색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1월, 부산에 오열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와 함께 경남 비상경비사령부로부터 오열 색출을 위한 지원 지시에 의거 1월 20일부터 부산에 지원 병력으로 파견되어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월 22일, 오열로 간주되는 적을 추격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관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ㄴ-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