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관(李永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46428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이영관 하사는 1929년 2월 1일에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2년 9월 10일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육군포병학교에서 포병 주특기교육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0포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관 하사는 제10포병대대에 배치된 이후 수도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다. 수도고지 전투는 무더웠던 1952년 여름에 시작하여 10월까지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공방전의 일환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여러 차례의 공방전이 있었고 잠시 전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9월 중공군이 대규모 공격을 가하면서 10월까지 격렬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 전투에서 제10포병대대는 전방연대에 치열하게 화력을 지원함으로써 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육군의 확장에 따라 포병부대는 6개의 야전포병단을 창설하여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육군직할 제15야전포병단은 1952년 12월 15일에 제76, 77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창설되었다. 이때 이영관 하사는 제77포병대대로 전속되어 포반장으로 보직되었다. 전선은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1953년 1월 20일부로 보병사단의 화력 증강을 위하여 105mm곡사포 3개대대와 155mm곡사포 1개대대를 예속시켜 사단포병단으로 명명하고, 2월 16일부로 군단포병단이 창설되어 군단 예하 사단포병단을 지원하면서 군단화력을 통합했다.
이영관 하사가 소속된 제15야전포병단은 수도사단을 지원하면서 1953년 5월 14~16일 강원도 김화 일대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또한, 5월 23~24일 금성 서남쪽 4㎞ 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이영관 하사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화력지원에 솔선수범 앞장섰으나, 1953년 6월 15일 금성지구 전투에서 적의 대응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관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3110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8면-0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ㅍ-07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