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관(이영관)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2520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영관 중위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중위는 예비역이었으나, 1950년 9월 15일 재소집에 응하여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 교관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1950년 7월 초순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그 후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가,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같은 날 부산에서 제2훈련소가 제1, 5교육대 병력과 제9교육대 일부 병력을 기간으로 창설되었다. 뒤이어 8월 22일에 이영관 중위가 소속된 제3훈련소가 동래군 구포에서, 제5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서 각각 창설되었다.
이영관 중위가 훈련소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 북한군의 공세를 힘겹게 저지하고 있었다. 9월 중순경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부대와 연결하여 반격작전을 실시하면서,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패잔병으로 전락한 북한군들은 게릴라로 변신하여 후방에서 병참선 차단과 주요시설 습격 등 교란 활동을 했다.
훈련소에서는 신병교육을 기본임무로 하면서 기동타격대를 조직하여 인근 지역에 출현한 적 게릴라 소탕 작전도 병행하여 실시했다. 이에 훈련소는 교관 및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 작전을 했다. 그러다가 9월 20일에 훈련소 인근에 적 게릴라가 출몰하여, 기동타격대원들은 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이들을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영관 중위는 대원들을 지휘통제하며 교전하다가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관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2면-96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ㄴ-05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