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관(李永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706968
- 전몰일자 : 19500919
공훈사항
이영관 하사는 경상북도 대구시 덕산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9년 9월 11일에 강원도 춘천에 주둔한 제6사단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7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춘천에 연대지휘소를 두고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했다.
제6사단은 당시 북한군 침략에 대비해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이후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했을 때, 이영관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곧바로 방어진지에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연대 장병들은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여 6월 27일까지 춘천을 사수하다가 이날 오후에 원창고개로 철수했고, 6월 30일에 원주를 거쳐 음성-충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와 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격전을 벌이며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3일에는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8월 말에는 신령 북방에서 북한군의 끈질긴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사단은 적의 대공세를 맞아 화산–725고지를 잇는 선에서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9월 7일부터 포병 화력과 미 공군 전폭기에 의한 항공화력을 지원받아 공격하여 적에게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이에 북한군은 9월 12일 이후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방어로 전환했다.
낙동강 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했다. 제6사단도 정면의 북한군을 향해 공격했다. 북한군은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했다. 이영관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9월 19일에 조림산을 향해 공격했다. 적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르고 강력히 저항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진두지휘하며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관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0-ㄲ-058)에 그의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