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교(李英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881
  • 전몰일자 : 19520805

공훈사항

이영교 일병은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9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제10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교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1년 1월 중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홍천으로 철수했고, 2월 11일 야간에 시작된 4차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2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어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횡성 방향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2월 20일에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한 후 4월 3일에 전주로 이동하여 제11사단으로부터 호남지구 공비토벌 임무를 인수하여 5월 11일까지 작전했다. 이후 사단은 5월 19일에 충북 제천으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가 되었고, 강원도의 돈평-고성재까지 진출하여 방어선을 배치하고 있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자, 유엔군은 공산군에게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로 하고 해안분지(펀치볼) 주변의 고지를 탈취하도록 했다. 이에 이영교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노전평 일대에서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3차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1031고지 및 965고지와 그 전방의 854고지를 탈취했다(노전평 전투). 얼마 후 제7사단으로부터 백석산에 대한 공격 임무를 인수하여 9월 30일에 공격하여 백석산-894고지-892고지를 10월 1일에 점령하였다.
이영교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11월 27일부로 백야전전투사령부에 예속되어 춘천에서 전주로 이동하여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백야사는 12월 2일을 기해 공비토벌작전을 전면적으로 개시하였다. 사단은 12월 2일부터 1952년 1월 31일까지 3기 작전으로 구분하여 노령산맥 남서쪽인 회문산-장군봉-신선봉-내장산 일대로 분산되어 은거 중인 공비를 탐색하여 격멸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3월 23일에 854고지-812고지(서화 북쪽의 노전평 부근)를 잇는 미 해병 1사단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는 8월 5일에 수색작전 중 적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3면-2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3-ㄷ-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