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교(李英敎)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50849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영교 하사는 1927년 5월 25일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9월 10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제10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교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던 11월 중순, 제8사단은 강원도의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방어진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제16연대를 교암산에, 제21연대를 어운리에 배치하고, 제10연대를 예비로 광대동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방어진지 전방의 수도고지, 지형능선, 271고지에 전초진지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나 수시로 아군의 전초기지를 탈취하기 위한 적의 도발이 계속 있었다.
그러던 중 중공군 제201사단이 1953년 5월 13일부터 18일까지 북한강 서안의 전초진지(271고지)를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탈취했고, 이에 사단의 예비로 있던 제10연대가 수차례에 걸쳐 강력하게 공격했으나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또한 중공군은 5월 27일부터 6월 12일까지 아군의 전초진지인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제10연대와 제21연대가 교대로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정이 타결되기 전에 전쟁의 최후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7월 14일 야간에 4개 사단을 제8사단이 방어 중인 금성돌출부 선단 지역에 투입하였다. 전방의 제10연대와 제16연대 전초지역이 순식간에 포위되었고, 이에 사단은 예하 연대 주력이 포위될 것을 우려하여 철수 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이영교 하사가 소속된 제10연대는 7월 14일 오후 3시에 제21연대의 엄호를 받으며 주파리로 철수하여 541고지-666고지-723고지를 잇는 저지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7월 15일 총반격을 개시하여 금성천까지 진격하기로 했으나,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다음 날인 7월 16일에 공격했다. 이번에는 제10연대가 중앙에서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제16연대와 제21연대가 흑운토령을 공격했다. 이날 그는 방어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교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8판-8면-1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3-ㅍ-03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