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교(李永敎)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47794
  • 전몰일자 : 19520816

공훈사항

이영교 하사는 1932년 4월 1일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대치하면서 휴전협상이 진행하던 1951년 10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영교 하사는 호남지구의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작전과 반복수색을 전개하였다. 제1연대는 조계산 북쪽에, 제26연대는 조계산 남쪽에 전개하여 기습공격을 단행하였다. 양 연대는 협공으로 목표를 점령한 다음 조계산 일대에서 반복수색을 계속하였다. 제1연대는 3월 14일부로 공비 토벌작전을 서남지구 전투사령관에게 인계하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였다.
이영교 하사와 연대병력은 3월 15일 남원을 출발해 춘천에 주둔해 있는 미9군단에 배속되었으며, 곧이어 사령부가 발전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1952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금성 방면 작전을 계속 수행하였다. 이어 5월에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화천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하다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순간적으로 서로 총알이 빗발치듯 오가는 교전에서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이 하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솔선수범하였던 이영교 하사는 1952년 8월 16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산화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교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5판-7면-02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ㅅ-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