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구(李永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25667
  • 전몰일자 : 19530603

공훈사항

이영구 이등중사는 1927년 4월 3일에 강원도 춘성군(現 춘천시) 신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2교육보충연대 창설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제52교육보충연대는 6·25전쟁 기간 한국군 사단 증편계획에 따라 새로 창설된 부대였다. 1951년 7월 10일에 시작된 휴전회담이 해를 넘겨 계속되자 한·미 양국은 미군 재보충의 어려움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3개 교육보충연대(제50·51·52연대)가 6월 13일 창설되었고, 이 중 제52교육보충연대가 독립연대로서 화천 축선을 담당하던 제2군단 예비로 투입되었다. 이때 이영구 이등중사와 부대원들은 교육훈련을 하며 후방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보급로 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 55, 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제12사단이 창설되었다. 사단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 51, 52연대를 건제부대로 재편성되었다. 이때 이영구 이등중사는 사단 수색대로 재배치되었다.
이영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2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면서 12월 30일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강원도 양구군 서화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전선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방어 배치를 하면서 양구 인근지역에 대한 수색정찰 및 매복 작전에 주력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사단 좌전방의 제37연대가 812고지를 탈취당하자, 제52연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6월 1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812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영구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역습부대의 공격을 증원하다가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1953년 6월 3일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구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6판-8면-20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5-ㄴ-03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