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구(李永球)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13299
  • 전몰일자 : 19521101

공훈사항

이영구 이등중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반격과 후퇴를 거듭하던 1951년 5월 6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 수색대는 항상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거나, 직접 적 지휘소 또는 보급소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구 이등중사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1년 6월 하순, 제8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예비로 인제-원통 일대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후 8월 1일부로 돈평-고성재를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곳에서 제8사단은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3차에 걸쳐 1031고지와 965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하고, 그 전방의 854고지를 점령함으로써 3차에 걸친 노전평전투를 성공적으로 종료하였다. 이영구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하여 작전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제8사단은 유엔군의 작전지침에 의거 해안분지(일명 펀치볼) 서측의 주보급로에 대한 진출을 저해하는 1090고지를 장악하기 위해 10월 6일부터 16일까지, 10월 27일부터 28일까지 두 차례나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제8사단은 작전지역을 제7사단에 인계하고, 11월 27일에 전주로 이동하여 백야전전투사령부(백야사)에 배속되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12월 2일부터 호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여 1952년 1월 31일까지 완료했다. 이후 사단은 다시 전방지역으로 이동하여 1952년 3월 23일부로 854고지-812고지(서화 북쪽의 노전평 부근)를 잇는 미 해병 1사단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북한군이 9월 21일에 방어진지의 일부인 854고지에 대해 공격하였고, 사단은 9월 25일까지 계속된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미 제45사단에 방어지역을 인계한 후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사창리로 이동했다. 얼마 후 10월 19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10월 25일에 수도사단으로부터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영구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11월 1일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보고하던 중 적 부대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구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8090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5묘역-6판-1161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3-ㄱ-09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