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구(李榮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9301143
  • 전몰일자 : 19511008

공훈사항

이영구 일등중사는 1923년 5월 3일 경상남도 울산군 두동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던 1950년 7월 2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구 일등중사는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 일등중사를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영구 일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23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24일 오전 10시 30분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남·북에서 협공을 받은 북한군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영변과 용산동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이 일등중사와 연대는 11월 20일 태천-구성-삭주-신의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24일에는 적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이 일등중사는 연대병력과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16일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이후 이영구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5월 6일 국사봉(109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7일 오전 6시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연대는 적정이 경미하여 원당리 부근으로 순조롭게 진출하였다.
이후 10월 3일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오전 6시에 임진강 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북한군의 저항을 크게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을 점령하였다. 이영구 일등중사는 일부 병력과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1951년 10월 8일 장단 부근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구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5553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ㄹ-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