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국(李榮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040
  • 전몰일자 : 19501203

공훈사항

이영국 일병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3일, 안강 지역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제17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영국 일병이 현재 입대하기 전, 제17연대는 8월 9일부로 포항지구전투사령부로 배속되어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사력을 다해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자 했다. 만약 기계-안강 지역이 돌파 당하면 지형상 북한군이 바로 경주-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이 종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대는 다행스럽게도 9월 13일에 곤계봉을 탈취함으로써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이영국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한국군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정되어 9월 중순에 상륙함정을 타고 인천으로 기동했다. 그 후 9월 18일에 인천에서 해병대에 이어 후속 상륙한 후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영등포까지는 기차로 이동했으며, 이후 도보로 기동하여 9월 25일에 신사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미 제32연대에 이어 서빙고 방향으로 한강을 건너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한편 유엔군 주력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진격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1월 7일에 국군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포천-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소탕을 위해 투입되었다.
이영국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포천 지역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 및 병참선 경계작전을 병행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선두가 압록강까지 진출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평양마저 포기하고, 다시 38선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이에 북한군 잔적들은 중공군 침공에 호응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후방에서 교란활동을 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12월 3일에 수색작전 중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4면–12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ㅎ-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