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국(李榮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8371
- 전몰일자 : 19510625
공훈사항
이영국 일병은 1931년 7월 28일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영월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항전했으나 적의 집중 공격으로 진지가 돌파당하고, 전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전개했고, 연대는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27일 경강국도 상의 강원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적의 포위망을 뚫고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병은 양양 일대의 수색정찰 작전 중에 6월 25일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에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ㄷ-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