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권(이영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9750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이영권 일병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압록강 및 두만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자 1950년 12월 30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권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방어 배치를 전환하여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부대들을 격멸하고 있었다.
이어서 사단은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2월 7일 제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사단예비인 이영권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했다. 이로써 사단은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하여 2월 9일부터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강원도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때 적 지휘소를 수색하여 다수의 문서와 탄약 25상자를 노획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그 후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4월 17일에 우측 전방 제36연대가 원통 북쪽의 481고지와 봉화봉을 확보하여 캔자스선으로 진출하였으며, 좌측 전방 제35연대는 원통 북쪽 장평 일대 586고지에서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한 후 월학리 일대로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5월 초순 美 제10군단에 배속되기 전까지 부대정비와 위력수색에 주력했다. 이영권 일병은 월학리 일대의 집결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부대정비 중 1951년 4월 25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권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3판-3면-0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ㄴ-03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