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권(李英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24121
  • 전몰일자 : 19530719

공훈사항

이영권 하사는 경기도 인천시 금곡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7월 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제1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권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8월 중순, 제8사단은 강원도 서화 북쪽 854고지-812고지(노전평 부근)를 잇는 방어진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얼마 후 9월 21일에 북한군이 사단의 전초진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고, 사단은 이를 격퇴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빼앗겼다. 이에 제16연대가 근접항공과 함포사격을 지원받아 9월 22일 아침에 역습하여 854고지 전방의 전초진지를 완전히 탈환했다.
이후 제8사단은 9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사창리로 이동하였고, 다시 10월 19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수도사단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였다. 당시 사단은 주파리에 사단지휘소를 설치하고, 금성돌출부의 동남쪽 지역인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제16연대를 교암산에, 제21연대를 어운리에 배치하고, 제10연대를 예비로 광대동에 위치시켰다.
금성돌출부는 김화 저격능선-금성 남쪽 중치령‧회고개-교암산-지형능선-수도 고지-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연하여 형성되었다. 당시 제8사단은 지형능선-수도고지-북한강 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얼마 후 중공군 제201사단이 5월 13일부터 18일까지 271고지 및 돌바위 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5월 27일부터 6월 12일까지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이영권 하사가 소속된 제16연대와 제10연대가 교대로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정이 타결되기 전에 전쟁의 최후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7월 14일 야간에 4개 사단을 국군 제8사단이 방어 중인 금성돌출부 선단 지역에 투입하였다. 이에 제8사단은 제10연대와 제16연대 전초지역이 순식간에 포위되었고, 연대 주력이 포위될 위기에 처했을 때, 철수하기로 했다. 이에 이영권 하사가 소속된 제16연대와 제10연대는 7월 14일 오후부터 제21연대의 엄호를 받으며 주파리로 철수하여 541고지-666고지-723고지를 잇는 저지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7월 15일에 금성천까지 진격하기 위해 반격을 개시하여 7월 19일에 금성천 남안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66-ㅈ-05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