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규(이영규)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81946
  • 전몰일자 : 19510117

공훈사항

이영규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하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칟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 중이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 축선에서 반격 중이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 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하여 사단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10월 25일까지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으며, 연대는 원산비행장과 고저-안변지역의 경계를 맡았다. 연대는 11월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던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전방에는 북한군 제2사단이 투입되었다. 적의 집중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항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했고, 1951년 1월 2일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봉화군 춘양으로 이동하여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에서 침투한 적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수색작전을 펼치다 적탄에 맞아 1월 1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3-ㄷ-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