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규(李永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79920
  • 전몰일자 : 19510605

공훈사항

이영규 일병은 황해도 황주군 흑교면(現 황해북도 황주군 흑교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16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규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1.4후퇴로 평택-안성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은 전력을 회복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려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중공군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사단은 3월 3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여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으나, 적의 4월 공세에 밀려 다시 소양강 남단으로 철수했다.
그 후 이영규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4월 25일부로 인제를 목표로 공격하는 제5사단의 예비대로서 주공인 제35연대를 후속하다가 제35연대의 소양강 도하와 동시에 619고지로 진출하여 사단 후방지역을 경계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중공군 5월 공세 때 중공군 3개 사단의 집중 포위공격 속에서도 홍천 일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美 제10군단은 화천저수지-해안분지-향로봉-거진을 연결하는 新캔자스(Kansas)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5월 25일부터 6월 2일까지 북한군 제2군단을 격퇴하여 인제・한계리 부근까지 후퇴시켰으며, 북한군은 인제 부근에 집결하여 역공세를 취하려 했다. 이 전투에서 제27연대는 6월 2일에 제35연대를 초월 공격하여 한계리 부근 고지군의 목표를 달성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하여 격전 끝에 북한군 제2·13사단을 격퇴하고,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하면서 新 캔자스선을 확보했다. 사단의 좌전방부대 제27연대는 원통-서화리 간 도로 우측의 명당산-피양동-서화리-987고지 방향으로 공격했으며, 명당산에서 연이틀 계속해서 적의 선제 기습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격전 끝에 이를 격퇴시켰다. 이 전투에서 이영규 일병은 6월 5일 강원도 인제 북방 명당산에서 분대원과 함께 돌격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0묘역-2판-16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ㅂ-01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