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규(이영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5358
  • 전몰일자 : 19510312

공훈사항

이영규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에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큰 피해를 받고 다시 평택-안성-삼척 선으로 철수하던 1951년 1월 2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영규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인 2월 초순, 제6사단은 장홍원 부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유엔군은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와 11월 24일 시작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12월 초순에 38선으로 철수했다. 이 시기 제6사단은 시변리-고랑포 축선으로 철수하여 12월 11경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영규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부대 이동 간 항상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망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펼친 중공군을 맞아 격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후방이 차단되어 방어진지에서 철수했다. 이후 1월 6일에는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2월 1일에 방어배치 조정에 의거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돌파구 확장을 방지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3월 중순에 홍천강에서 북한강까지 진출했다. 이 시기에 이영규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소통을 위해 통신선을 매일 점검했다. 그러던 중 그는 3월 12일에 통신선 선로 점검 중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ㅊ-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