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규(이영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02693
  • 전몰일자 : 19511215

공훈사항

이영규 일병은 경상북도 문경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던 1950년 10월 9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6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이영규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인 11월 중순, 제6사단은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어 있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개시하여 압록강-두만강까지 진격하고자 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다시 38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 이어서 2월 1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그리고 중공군의 4월 공세와 5월 공세를 맞아 공세적인 방어로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5월 24일부터 춘천 서북방으로 진출하여 28일에는 화천저수지 이남의 선까지, 6월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철의 삼각지대의 우반부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그동안 이영규 일병이 소속된 수색중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들락거리며 적정을 살펴 사단에 보고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을 습격하여 후방을 교란했다.
제6사단은 1951년 가을이 되면서 유엔군 작전방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펼쳤다. 먼저 방어선 전방의 819고지를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공격하여 탈취했다. 또한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된 공격으로 교암산-송설리-송동리 선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되었고, 이복선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 파악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12월 15일에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02253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ㅇ-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