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규(易英珪)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20428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영규 일등중사는 1929년 4월 10일에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6월 4일에 대전에 주둔하고 있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8년 12월말부터 1949년 5월 17일까지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서울 용산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육군의 병력배치 조정에 의해 그는 춘천에 주둔한 제7연대로 전속되었다. 당시 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이영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좌측연대로서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 방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는 북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화천에서 춘천에 이르는 도로상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대전차 예비진지 3개를 구축했다. 그리고 중대마다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 간에는 철조망을 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또한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변과 춘천을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전쟁 발발 1개월 전인 5월 하순에 공사를 마쳤다. 연대는 비교적 다른 사단 및 연대보다 방어준비태세를 철저히 했다. 또한 사단은 전쟁 발발 직전에 38선 일대에서 남침을 예견하는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자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 유지를 강조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곧바로 전방지역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에 집중하여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 시킨 후 보병들이 후속하여 공격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57mm 대전차포 및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하고,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 부대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국군 제7연대의 전투력은 공격하는 북한군 제2사단의 전투력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하였다. 이영규 일등중사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워 적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나, 밀려오는 적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투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규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37-ㄷ-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