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규(李永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605576
  • 전몰일자 : 19510823

공훈사항

이영규 일등중사는 1928년 6월 25일에 충청북도 청주시 수곡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22일, 충북 청주의 제16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연대는 제2사단에 예속되어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공격으로 침략했을 때, 이영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6연대는 6월 26일 오전에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으로 투입되었으나, 적의 공격에 큰 피해를 받고 의정부-창동-미아리방어선을 거쳐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신사리-동작리 일대에 배치되어 6일간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7월 3일에 철수하여 진천-청주-보은 일대에서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제2사단이 7월 20일부로 해체되면서 제16연대는 제8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이후 제8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8월과 9월에 실시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에 반격으로 전환하여 10월 초순에 38선을 돌파하고, 19일에 평양 동쪽의 강동을 점령했다. 이후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해 두 차례에 걸쳐 총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받고 12월 5일에 38선으로 철수하여 화천저수지 남쪽의 경운산-추전리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에 3차 공세(일명 신정 공세)를 개시하였다. 당시 국군 제8사단은 접적이 경미하였으나, 인접 사단의 철수로 인해 홍천으로 철수하였다. 얼마 후 중공군은 2월 11일 밤에 4차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시작했다. 이에 사단은 몇 시간 지나 후방이 차단되었음을 알고, 횡성 방향으로 철수했고, 2월 20일에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그리고 4월 3일에 전주로 이동하여 5월 11일까지 금산, 국사봉, 부안 등지에서 게릴라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5월 19일에 충북 제천으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가 되었다. 제8사단은 홍천을 거쳐 인제-원통으로 이동하여 미 제10군단의 예비가 되었다가 8월 1일부로 돈평-고성재를 잇는 선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당시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제한적인 공세작전을 계획하였다. 이에 이영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8월 9일을 기해 일제히 공격하여 8월 14일에 중간 목표인 445고지-1010고지를 탈취하고,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2차 공격을 통해 최종목표인 1031고지와 965고지를 탈취했다. 그는 8월 23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규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9묘역-2판-1781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ㅈ-05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