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균(李榮均)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94219
  • 전몰일자 : 19530208

공훈사항

이영균 하사는 1925년 9월 5일 경남 남해군 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2년 2월 1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50교육보충연대에 배치되었다.
제50교육보충연대는 6·25전쟁 기간 한국군 사단 증편계획에 따라 새로 창설된 부대였다. 한·미 양국은 미군(or 유엔군) 재보충의 어려움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에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추가로 창설되었다. 10월 30일에 육군 2개 사단 증편계획이 확정되자, 육군본부는 11월 8일부로 위의 6개 경보병연대를 중장비 연대로 개편함과 아울러 6개 경보병연대(제53~제59교육보충연대)를 추가 창설했다. 그리고 같은 날 강원도 양양에서 제12, 제15사단을 창설했다. 이때 제15사단은 제57·58·59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1월 14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8·39·50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0일부터 1953년 1월 10일까지 부대교육훈련(UTC교육)을 하고, 1월 12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된 뒤 강원도 고성군 간성으로 이동하여, 1월 30일 제5사단이 수행하던 동해안 지구 방어임무를 인수했다. 사단은 남강 남안의 554고지-351고지-동해안에 이르는 16km의 정면을 맡았고, 연대는 사단의 우전방 연대로서 351고지 일대의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은 6월 본 공세에 앞서 351고지 일대에 전력을 집중했다. 사단 전방의 북한군 제7군단 예하 제7사단이 6월 2일 집중 공격을 감행했고, 사단은 제38연대가 351고지를 빼앗기고 339고지로 물러나자 제50연대를 투입했다. 연대는 6일까지 4차례나 역습을 가하면서 분전했지만 끝내 351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전투를 종료했다(제1차 전투). 사단은 6월 15일 제39연대로 역습을 실시했으나 351고지 탈환에는 실패하고 말았다(제2차 전투).
공방전이 잠시 소강상태였던 7월 8일, 이 하사는 정찰팀에 편성되어 대대 방어진지 전방에서 정찰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과 조우하면서 교전이 벌어졌다. 이 하사는 적을 격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가 적탄에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5-ㅅ-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