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균(李永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467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영균 일병은 강원도 단양군 매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럽던 1950년 1월 1일, 강원도 강릉의 제8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국군 제8사단은 지휘소를 강릉에 두고, 예하 제10연대를 전방 38선 일대에, 제21연대를 후방 삼척에 배치하고 있었다. 이영균 일병이 소속된 공병대대는 사단지휘소와 함께 강릉에 주둔하면서 1중대는 제10연대를, 제2중대는 제21연대를 직접지원하고, 제3중대는 사단을 일반지원했다. 이영균 일병이 소속된 제1중대는 주문진에 주둔하며 제10보병연대를 직전지원했다.
북한군 제5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증강된 2개 연대를 동해안 축선으로 지향시키고, 1개 연대를 산간 도로를 따라 서림리에서 광원리로 남진시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더불어 적 유격대 2개 대대가 옥계와 임원진에 약 1,000명을 정동진과 임원 일대로 상륙시켜 국군 제21연대의 증원을 차단함과 동시에 남진하는 육상부대와 합류하여 강릉 북쪽의 연곡천 지역에서 국군 제10연대를 협공하려 하였다. 그리고 일부 경비여단 병력을 산악지대로 침투시켜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국군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은 기습공격으로 예하 부대 상호 간의 통신 연락이 차단되어 대대 및 중대 단위로 분산 고립될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이영균 일병이 소속된 공병대대는 제10연대와 함께 화상천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북한군의 막강한 전투력에 밀려 사단 주저항선인 연곡천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당시 장병들은 일제 철모와 소총, 미제 군화와 박격포, 통신장비 등 기본 장비와 무기마저 통일되지 않았고, 그마저 수량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다. 이는 소련제 최신 무기를 지원받은 북한군과 큰 군사력 격차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열세한 상황에서도 장병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다.
이영균 일병이 소속된 공병 제1중대는 북한군의 침략 당일인 6월 25일에 전방 진지로 투입하여 교량을 거부하여 장애물로 활용하다가 연곡천 일대로 철수하여 보병부대 장병들과 함께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6면-0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6-ㅈ-00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