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균(李永均)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201214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영균 하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시기인 1948년 7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영균 하사는 문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이 1950년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여 그를 비롯한 장병들은 한때 이들을 일제사격으로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 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이 하사와 연대병력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이영균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9월 6일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를 차단하고 대구간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였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봉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영균 하사는 1950년 9월 20일 팔공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균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216 육)을 추서하고 위패(07판-1면-18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ㅎ-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