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균(李永均)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301896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영균 하사는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던 1950년 8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영균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가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가산(902m)은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여 전술적으로 중요하였으므로 쌍방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어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으며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10월 10일에는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이후 11월 28일 이 하사가 소속된 사단 병력은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고, 다음날 박천-용산동 일대를 고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 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증원부대를 투입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였다.
이영균 하사는 사단 병력과 함께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1개 대대 규모의 패잔병을 소탕하였으며 이후에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지역 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14일 38도선에서 철수한 사단은 고랑포에 배치되어 전쟁 개시 6개월 만에 이전의 진지를 다시 점령하게 되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도감포 지역으로 집중 포격을 개시하였다.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으나 도하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1사단은 1951년 1월 아군의 철수작전으로 단절된 접적을 유지하고 공산군의 기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방어선 전방으로 정찰대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이영균 하사는 일부 병력과 정찰 활동 도중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을 받아 1951년 1월 3일 안성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1판-5면-2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ㄹ-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