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이영근)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10816
  • 전몰일자 : 19511228

공훈사항

이영근 하사는 1928년 8월 10일에 경상남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1일 입대하여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제3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차출되었다.
이영근 하사는 기본교육을 받고 美 제25사단에 배치되어 적정탐색, 포로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년 2월 중순경 육군직할 제10경비대대로 전속되었다. 당시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1951년 4월까지 14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그 중 제10경비대대는 강원도 남부과 경상북도 등의 후방지역에서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1년 2월 10일 경상북도 울진에서 창설된 부대이다.
한편, 유엔군이 북진할 때 미처 후퇴하지 못한 패잔병들이 지방 좌익 세력들과 규합하여 게릴라부대들을 조직하여 제2전선을 형성했다. 이들 부대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선으로 내려오자 그들의 전선타격부대와 배합전술을 펼치면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에 제10경비대대는 강원도 남부지역과 경상북도 지역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면서 게릴라 소탕작전을 지속 실시했다. 그러던 중 1951년 12월 27일 제10경비대대는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읍 일대에서 준동하는 게릴라 토벌을 위해 출동했다. 이영근 하사는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이 토벌작전에 앞장섬으로써 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으나, 수색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에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중상을 입고 대구에 위치한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하사는 병원에서 신속하게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이 악화되어, 다음날인 12월 28일에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0판-8면-0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ㅈ-09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