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이영근)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34663
- 전몰일자 : 19510606
공훈사항
이영근 하사는 1928년 11월 19일에서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15일, 타 부대에 현지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제5사단 통신대로 재배치되었다.
이영근 하사가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은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 중에 있었고,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어 11월 22일까지 영남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북진을 계속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12월 초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제5사단은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였으며,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북쪽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 준비를 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3월 3일부터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4일 전선조정으로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지만 다음날 오전에 인제를 공격하여 재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인제군 논리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 제12군은 5월 16일 오후 5시 30분부터 춘천 내평리 일대에서 공격(일명 5월 공세)을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포위망을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 후 이영근 하사가 소속된 제5사단은 5월 29일부터 군단 우측을 담당하면서, 현리 서북방 지역에서 캔자스선 진격을 위해 북한군 제2군단을 추격했다. 그러나 사단은 5월 31일 대규모 적에게 포위를 당하여 철수하면서 현리 서쪽 매봉재 일대를 점령하고 6월 초순까지 방어에 임했다. 이어서 사단은 6월 4일부터 6월 17일까지 14일간의 격전 끝에 원통 북방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연하는 新 캔자스선 점령에 성공했다. 이영근 하사는 6월 6일 원통 일대에서 분대원을 통제하며 예하부대와 통신망을 확인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5면-905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ㅌ-04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