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李永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106164
- 전몰일자 : 19510410
공훈사항
이영근 일등상사는 황해도 연백군(現 황해남도 백천·연안·청단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948년 5월 29일 제1연대에 현지 입대했다. 연대는 1949년 6월부터 동두천 북방의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이영근 일등상사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일대 경계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1월 하순경에 제5사단으로 전속되었다.
제5사단은 6·25전쟁 발발 전까지 사단사령부를 전라남도 광주에, 제15연대를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 일대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사단은 제15, 20연대로 제1사단 장병들과 함께 문산 및 봉일천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역부족으로 6월 28일에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제5사단은 7월 초 국군 재편성 시에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 시 이영근 일등상사는 사단 예하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이영근 일등상사가 연대에 재배치될 무렵은 아군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 중에 있었으며 사단은 10월 15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지역의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했다. 그러나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함으로써,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하다가, 12월 13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 준비를 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하였으며, 1951년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한 후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가 되었다. 이영근 일등상사는 부대원들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 문막을 거쳐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그 후 사단은 중공군 2월 공세 시 횡성 일대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적의 공격을 안흥 일대에서 저지해 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3월 3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영근 일등상사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봉화봉을 목표로 공격하다가 1951년 4월 10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일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7판-5면-22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하였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ㅋ-05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