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李英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800935
  • 전몰일자 : 19510531

공훈사항

이영근 일등중사는 1926년 3월 8일에 충청남도 서산군 대산면(現 서산시 대산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가운데 1949년 1월 3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제17연대로 현지 입대했다. 연대는 건군 초기의 혼란을 안정시키는 작전에 참여하였으며, 11월 15일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로 예속되어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6일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때 이영근 일등중사는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건강을 회복하고 10월 초순경 제5사단 본부중대로 재배치되었다.
이영근 일등중사가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7월 5일 국군의 부대 재편성 때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제27, 35, 36연대 등 3개 연대와 수색대, 공병대, 통신대 등을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사단은 재창설된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 토벌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었다. 사단은 12월 5일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했다. 사단은 철수부대의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3월 3일부터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인제군 논리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침내 사단은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받고 포위망을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격전을 치르며,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이후 사단은 5월 29일부터 군단 우측을 담당하면서, 현리 서북방 지역에서 캔자스선 진격을 위해 북한군 제2군단을 추격했다.
그러나 사단은 5월 31일 대규모 적에게 포위를 당하여 철수하면서 현리 서쪽 매봉재 일대를 점령하고 방어에 임했다. 이영근 일등중사는 매봉재 일대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매봉재 일대로 철수 중 5월 31일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2판-7면-1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ㄹ-00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