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李榮根)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903117
- 전몰일자 : 19501031
공훈사항
이영근 하사는 1931년 9월 17일에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9년 2월 26일, 충남 온양의 제18연대로 입대했으나, 이후 제21연대가 7월 5일에 제8사단으로 예속되어 강원도 삼척으로 이동할 때, 그는 제21연대로 전속되었다. 연대는 태백산과 오대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남침을 했을 때, 제8사단은 6월 27일까지 강릉을 사수하다가 전투력의 열세로 대관령으로 철수했다. 이어 6월 28일 아침 8시에 강릉을 목표로 반격했으나, 육군본부의 철수 명령에 따라 다시 대관령으로 철수한 후 6월 29일에 이동하여 7월 2일에 제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영근 하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도화리-무도리 선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7월 12일에 풍기로 철수했고, 이어 7월 14일부터 28일까지 풍기ᐨ영주-안동 축선에서 치열한 전투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8월 1일 새벽에 폭파된 안동교 주변으로 철수를 했다.
제8사단은 의성-영천 축선에서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영근 하사가 소속된 제21연대는 낙동강 선을 돌파한 후 9월 24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의성을 탈환하고, 10월 2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이어 10월 3일부터 양평-양수리-도농을 거쳐 서울의 미아리 부근까지 진격하였다. 이후 사단은 10월 8일에 북한군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 38선을 돌파하여 전곡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10월 18일에 강동을 점령하고, 북창(강동 동북방 55㎞)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3일에 덕천을 점령했다.
유엔군은 1950년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제8사단은 희천을 점령한 후 강계 방향으로 진격했다. 선두부대인 제10연대가 10월 26일에 제일 먼저 희천에 도착했을 때, 군단으로부터 공격중지 명령이 하달되었다. 당시 중공군 제38군단은 만포진으로 압록강을 건너 들어온 다음에 강계-희천축선을 따라 제8사단을 압박하면서 청천강 축선을 따라 공격하였다. 이후 이영근 하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희천에서 철수하여 10월 29일에 운산-구장동 지역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는 10월 31일에 청천강 남안의 개천으로 철수하던 중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1묘역-111판-440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ㅁ-03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