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李英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105
  • 전몰일자 : 19510217

공훈사항

이영근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근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북한군 제12사단은 비학산 일대에서 9월 공세를 시작하였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9월 4일 형산강 이남에서 북한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 장병들은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원산탈환작전을 완료한 연대병력은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영흥-함흥-성진 진격전을 전개하였다. 이영근 일병을 비롯한 연대 장병들은 도채동-서림-양양선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중공군의 정면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정면공격보다 오대산과 설악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형을 발판으로 연대의 후방으로 진출하여 후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기도하였다.
1951년 1월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공세에 직면했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조정에 따라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2월 3일 이영근 일병과 연대병력은 묵호 부근에서 옥계로 진출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연대정면의 적은 강릉 남쪽의 청량리-아산리 간의 도로변에 견고한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강릉을 사수하고자 함으로써 치열한 격전을 치러야만 하였다.
강릉을 공격하던 이영근 일병과 연대병력은 접적이 경미하여 4일 강릉을 목전에 둔 동남쪽 7km까지 진출하였다. 그들은 5일 구산리와 강릉을 목표로 포병화력의 엄호 하에 총공세를 개시하였으나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목표탈취를 못하고 다음날(6일)공격을 재개하였다.
이 일병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영근 일병은 1951년 2월 17일 강릉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ㄹ-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