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李永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3800727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이영근 이병은 서울시 종로구 인의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2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훈련만을 익힌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근 이병의 입대를 전후한 전쟁 상황은 북한군의 기습남침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긴 국군은 긴급 참전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낙동강까지 철수한 후 8월 포항으로부터 안동-영천-신령-칠곡-현풍-창녕-마산을 잇는 200㎞ 길이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영근 이병은 제1사단에 소속되어 8월 12일부터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다부동 전투를 수행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응전하였다. 연대는 수차례 반복된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그때마다 전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의 접근을 저지하였으나, 탄약이 소진되고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전력이 급격히 감퇴되었다.
북한군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다. 제12연대는 유학산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반복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도 전차를 새로이 보충받아 보·전 협동으로 전면적인 야간공격을 개시하여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풀이 되었다. 쌍방간에 많은 손실을 낸 채 19일에 수암산을 재차 피탈당하고 유학산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반복하였다.
이영근 이병이 방어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신병에 불과하였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투철하였다. 그러나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하였던 이영근 이병은 1950년 8월 19일 유학산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7판-4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ㅈ-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