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근(李永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0320146
  • 전몰일자 : 19510630

공훈사항

이영근 일등상사는 전라북도 완중군 조촌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1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영근 일등상사가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기습남침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긴급 참전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낙동강까지 철수한 후 8월 포항으로부터 안동-영천-신령-칠곡-현풍-창녕-마산을 잇는 200㎞ 길이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제1사단은 10월 9일 유엔군과 함께 38도선을 돌파하였다. 조국 통일의 꿈을 안고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이 일등상사와 장병들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였다. 이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는 중과부적이었다. 사단은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이영근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말 반격을 시작하여 수원과 관악산을 거쳐 2월 10일 한강 남쪽에 도달하였고, 16일에는 한강 남쪽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3월 15일에는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을 탈환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4월에는 다시 임진강까지 진출하였다. 이어 4월 21일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 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영근 일등상사는 1951년 6월 30일 비지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근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4면-0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0-ㅅ-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