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李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6499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이영기 상병은 경상남도 거창군 월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펼치던 1950년 7월 25일, 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내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9월 16일부터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미 제2사단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낙동강을 도하한 후, 9월 24일에 합천을 탈환하고 거창-전주-논산을 거쳐 9월 30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미 제2사단은 퇴로가 차단되어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덕유산과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미 제8군은 10월 초순에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9일에는 평양을 탈환하고, 24일에는 청천강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으나, 적유령산맥 일대에 숨어 있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후방지역작전을 하고 있던 미 제9군단과 미 제2·제25사단을 청천강 선으로 북상시켜 전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제2사단은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의 후방지역작전을 11월 2일부로 국군 제11사단에 인계하고, 11월 15일 평안남도 개천 및 군우리 지역으로 이동했다. 유엔군은 정확한 적정을 모른 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했고, 미 제2사단은 희천을 목표로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중공군 제40군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어 11월 27일에 군우리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군우리 일대에서 중공군 제40군단의 정면 공격과 제38군단의 측후방 공격을 받으면서, 12월 1일까지 군우리-순천 사이의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하며 철수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사단은 순천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고, 이후 평양에서 철수하여 12월 중순에 영등포에 집결하여 부대 정비 후 충주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이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실시하여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선으로 철수할 때, 미 제2사단은 프랑스 및 네덜란드 대대를 배속받아 원주 동남쪽 고지군에 투입되어 공산군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이 상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1951년 1월 4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0-ㅇ-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