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이영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8320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이영기 일병은 1933년 5월 17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차출되어 복무하다가, 국군 제2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한편 육본 직할부대로 제3사단에 배속되었던 제25연대는 낙동강방어선인 안강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투력이 소진되었고, 결국 8월 16일 해체되어 제26연대에 편입되었다. 이영기 일병이 소속된 제26연대는 1950년 8월 10일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기계-안강전투에 투입되었다가 8월 20일 제3사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부대 정비 후 8월 20일 전선에 재투입되었다. 이후 제26연대는 9월 14일까지 기계 남쪽 445고지와, 형산, 운제산 전투에 투입되어 적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9월 22일부터는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23일부터 30일까지 추격작전을 전개하여 1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며 영덕, 울진, 삼척, 강릉을 차례로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거진-장전-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했고, 美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美 제1해병사단에 경계임무를 인계한 사단은 11월 4일 함경남도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월 11일 사단은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11월 30일 사단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美 제10군단장의 철수명령에 따라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제26연대는 12월 17일 흥남에서 철수하여 묵호항에 상륙했으며, 12월 25일부로 제3사단에서 수도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수도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축선을 담당했다. 1951년에 접어들어 제26연대는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에 직면했으나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이영기 일병은 1951년 1월 4일 양양에서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1면-2253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4-ㄱ-109)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