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李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176
- 전몰일자 : 19500912
공훈사항
이영기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5일, 기계-안강전투를 수행하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영기 일병이 현지 입대하기 전,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상의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24시간 이상 지탱했으나 6월 26일 아침에 더는 방어진지를 지탱하지 못하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부포항과 사곶항에서 해군에서 지원된 LST를 이용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제17연대는 대전에 위치한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참전할 때 평택과 오산 사이의 갈곶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전투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철수하여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7월 중순에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2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획득했다. 이 전투는 당시 철수만 계속해왔던 장병들의 사기 앙양에 크게 기여했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연대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이라는 표창을 수여했다.
이영기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8월 9일부로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적의 진출을 저지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5사단과 합세하여 경주를 점령하기 위해 안강 지역을 탈환했다. 연대 장병들은 안강을 적에게 내어주고 곤계봉-호명리 선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 장병들은 9월 13일까지 안강 지역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곤계봉을 두고 적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탈환했다. 그 결과 제17연대는 안강 남쪽의 주저항선을 회복하고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는 9월 12일 안강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5면-2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ㅇ-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