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李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2410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영기 일병은 1928년 2월 25일 경상북도 김천군 아동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11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북쪽의 고지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9월 14일까지 포항과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 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하여 사단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10월 25일까지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으며, 연대는 원산비행장과 고저-안변지역의 경계를 맡았다. 연대는 11월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던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전방에는 북한군 제2사단이 투입되었다. 적의 집중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항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했고, 1951년 1월 2일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1월 1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3판-41면-2253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ㅍ-01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