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李榮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76448
- 전몰일자 : 19530517
공훈사항
이영기 이등중사는 1930년 12월 25일 경상북도 안동군 서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12월 21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9사단은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이등중사는 부대 배치 후 연대 장병들과 함께 강원 김화지구의 계웅산 일대에서 전초쟁탈전과 포로획득전 등을 전개했다.
사단은 1952년 4월 5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6월 21일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 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9월 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끎으로써, 한국군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사단은 10월 26일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고 강원 철원군 사창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11월 25일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맡게 되었다. 연대는 1953년 5월 중순까지 저격능선과 상감령 일대에서 진지보강을 하면서 소규모 전초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수색·매복작전을 지속 전개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하계공세를 감행했고, 그 제1단계 공세의 일환으로 1953년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저격능선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싸우며 진지를 지켜내고 적을 격퇴했으나, 자신은 5월 17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2599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6묘역-10판-106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0-ㄹ-03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