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李英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230971
- 전몰일자 : 19530309
공훈사항
이영기 이등중사는 1931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2년 8월 14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9사단은 4월 5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1951년 11월 27일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지속되었다. 사단의 우전방에 배치된 연대도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9월 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끎으로써, 한국군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사단은 10월 26일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고 사창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후, 11월 25일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맡게 되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됨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연대는 1953년 5월 초순까지 저격능선과 상감령 일대에서 소규모 전초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수색·매복작전을 지속 전개했다.
연대는 1953년 들어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주저항선과 전초기지의 교통호를 물결형으로 보강하는 한편, 전 유선망을 교통호 지하에 매설했다. 이 이등중사는 1953년 3월 9일 소대원을 이끌고 진지보강 작업 중에 적의 습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8871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0-ㄷ-02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