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기(李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2528
  • 전몰일자 : 19510304

공훈사항

이영기 일병은 1922년 11월 1일 경상북도 칠곡군 타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 있던 위급한 시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11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이 창설될 때 병참중대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이 10월 25일 제28·29·30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서울에서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과 지역 공산주의자들이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25사단이 청천강 선으로 투입됨에 따라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동 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작전에서 사단은 게릴라 2,125명을 사살하고 259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고, 이 일병은 병참 중대원들과 함께 광범위한 지역에서 적시적인 급식과 보급에 앞장섬으로써 사단 작전에 기여했다.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여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 때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사단은 1951년 1월 3일 제3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이하여 사단 서측방에 대한 적의 공격을 1951년 2월 16일부터 24일까지 치열한 전투 끝에 막아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2월 21일 제29연대에 급식 추진을 하다 적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3월 4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기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8717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7-ㄱ-09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