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길(李永吉)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111
공훈사항
이영길 경사는 1927 7월 3일 서울시 마포구 하수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순천 철도경찰 소속으로 재직 중 여수에서 전사했다.
1949년 4월 22일 내무부 치안국은 직속으로 철도경찰본대를 두고 용산, 청량리, 인천, 개성, 대전, 곡성, 광주, 목포, 순천, 대구, 안동, 부산에 지방철도경찰대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철도경찰에게 부여된 주 임무는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에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할 것과, 전투경찰대를 편성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한 후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철도경찰대 본부는 모든 지방철도경찰대에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순천 철도경찰은 순천역 일대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며 순천-남원, 순천-여수를 잇는 철도 경로 상의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북한군이 광주에 진입하자 전남도경은 전투대대를 편성하여 적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실패하고 지휘부(비상경비사령부)는 화순을 거쳐 벌교-순천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순천 철도경찰은 순천경찰과 함께 후퇴를 시작하여 광양-진주를 거쳐 7월 27일 함안에 도달하였고,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하였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순천 철도경찰은 9월 17일 이동을 개시, 9월 23일 순천 철도경찰대로 복귀하여 순천역 일대의 잔적을 소탕하는 한편, 철도역의 정상적 기능 복구, 터널 주변의 시설 복구, 적이 설치한 폭발물 제거 임무를 수행했다.
호남지구로 남진하여 낙동강 서쪽 창녕-마산 전선에 투입되었던 북한군 제4·제6·제7·제9·제19사단은 아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으로 인하여 퇴로를 차단당했다. 이들 사단 주력부대는 서둘러 북상 퇴주하였으나 일부 부대는 퇴로가 차단되어 지방 공비들과 합류하여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1951년 1월 11일, 여수에 공비들이 출현하자 여수·순천경찰과 순천 철도경찰 병력이 출동했다. 이 경사는 여수 야도에 침입한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길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ㄴ-02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