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길(이영길)

  • 군별 : 육군
  • 계급 : 소령
  • 군번 : 12954
  • 전몰일자 : 19510315

공훈사항

이영길 소령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호국간성이 되고자 육군사관학교에 제8기 특별 3반 과정으로 1949년 12월 7일 입교하여 3개월간 교육훈련을 받고 동년 3월 2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2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 연대는 동년 8월 10일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이 소령은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황해도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덕정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일전을 벌였다. 6월 29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방어선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 북방의 미호천-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길안-청송 방어선과 의성 북방의 장림리 전투, 영일군 기계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기계-안강-경주 축선의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힘입어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30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은 연대는 강원도 간성-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격했다. 연대는 원산-함흥-청진-부령(11월 30일)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으로 평창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1951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영주 남대리 부근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미 제187연대전투단에 배속되어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봉화산을 점령하지 못하고 정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소령은 대대를 진두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3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길 소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47판-2면-08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ㅁ-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