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남(李暎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705419
  • 전몰일자 : 19500714

공훈사항

이영남 이병은 1932년 11월 22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9년 1월 12일, 충북 청주에 주둔한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9년 청주에서 춘천으로 이동하여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 방면을 담당했다. 당시 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어 있었고, 사단은 제2, 제7, 제19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영남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북한군 침략에 대비한 방어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는 중대원들과 함께 방어진지에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 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그리고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 차안과 춘천 분지를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또한 사단에서는 전쟁 발발 직전에 38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수상한 공격징후들이 포착되어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 유지를 강조했다.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방어지역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이영남 이병은 장병들과 함께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했다. 또한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한편 북한군은 당일 중에 춘천을 점령하고자 했던 계획이 실패했다.
이영남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6월 27일 오후 1시부터 춘천에서 철수를 개시하여 원창고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다시 홍천을 거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육본 명에 의거 지연전을 수행하며 음성으로 이동하여 7월 4일부터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는 7월 9일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하다가 7월 10일에 음성에서 괴산지역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7월 14일부터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실시했다. 이영남 이병은 이날 야간에 침투한 적 부대와 치열하게 전투했다.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남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4묘역-5판-132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ㅇ-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