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노(李永魯)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65544
- 전몰일자 : 19510802
공훈사항
이영노 상병은 경기도 인천시 연희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2월 8일에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수색 중대에 배치되었다.
이영노 상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당시에 본부를 남원에 두고,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역에 각각 분산 배치되어 후방지역에서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실시했다.
이영노 상병이 소속된 수색 중대는 3월 17일에 화학산 일대에서 제9연대와 협조하여 게릴라들과 교전해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북한군 게릴라들은 세력으로 활동하는 것은 소멸되고 소규모 활동만 이어 갔다. 이에 사단은 게릴라 토벌작전 임무를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인계 완료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제11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에서 저지했다. 이후 5월 7일부터 반격을 실시하여 11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시키고, 22일부터 강릉-양양-간성-건봉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6월 초에 거진-건봉령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 진행으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영노 상병이 소속된 수색 중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 주요시설을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1951년 8월 2일에 수색소대 장병들과 함께 적진으로 침투하던 중에 적 매복조에 걸려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즉각 대응하며 용감하게 싸워 적을 격멸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노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72-ㅂ-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