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달(이영달)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1503
- 전몰일자 : 19511029
공훈사항
이영달 중위는 1930년 12월 30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중위는 장교가 되고자 육군종합학교에 보병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1951년 3월 3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37~38도선 상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이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연대는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인제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을 물리쳤다. 연대는 5월 7일부터 13일까지 미주리선 진격전에 참가하여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양양, 고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매복작전, 보급로 경계, 주요시설 경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동북방의 가칠봉 일대로 이동하여 제5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제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중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달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3-ㅋ-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