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달(李永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888
- 전몰일자 : 19500907
공훈사항
이영달 일병은 경상남도 마산시 대성동에서 출새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하며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7월 15일,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달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인 8월 초순, 제8사단은 8월 5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8월 총공세에 밀려 의성-영천 축선에서 지연전을 수행하면서 철수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8월 13일에 영천 북동쪽 고지로 철수하였고, 이곳에서 쌍방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8월 말까지 수일간 전개되었으나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공병대대는 적의 진출을 방해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에 장애물 설치를 적극적으로 했다.
북한군 제8사단과 제15사단은 국군 제6사단 및 제8사단을 돌파해 하양과 영천을 점령한다는 세부계획 하에 9월 2일 이른바 9월 공세를 개시하였다. 한편 국군 제8사단은 제21연대를 서쪽의 노고재ᐨ보현산에, 제16연대를 동쪽의 입암(立岩) 남쪽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이미 8월 말부터 전초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영천 북방의 보현산과 입암리 선에서 9월 2일까지 적을 저지하고, 9월 4일 기룡산 일대로 철수해 서로부터 제21연대, 제16연대, 제7사단 제5연대를 배치해 적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이영달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21연대를 직접지원하여 적 기동로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월 5일 새벽 1시에 기습공격으로 수 시간 만에 단포동까지 깊숙이 돌파하여 국군 제8사단을 동서로 분리했고, 계속 공격하여 9월 6일 새벽에는 영천을 탈취하고, 남쪽의 경주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에 제8사단은 북쪽 선천리의 제21연대로부터 남쪽 아화리의 제5연대까지 낚시바늘 모양의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영달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9월 7일에도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제21연대 방어지역 전방에 장애물 설치를 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7면-1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ㅌ-02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