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대(李英大)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52552
  • 전몰일자 : 19510903

공훈사항

이영대 하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대 하사가 전선에 투입될 무렵 연대는 형산강 이남에서 북한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원산탈환작전을 완료한 연대병력은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영흥-함흥-성진 진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는 12월 도채동-서림-양양선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중공군의 정면공격에 대비하였다.
1951년 1월 이영대 하사와 연대병력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 공세에 직면했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고 이어 2월 3일에는 묵호 부근에서 옥계로 진출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연대 정면의 적은 강릉 남쪽의 청량리-아산리 간의 도로변에 견고한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강릉을 사수하고자 함으로써 치열한 격전을 치러야만 하였다.
이영대 하사와 연대병력은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연대병력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이 하사와 장병들은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 지구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8월 18일 북한군이 점령한 924고지(서화리 동북 및 향로봉 서북 7㎞)를 공격하여 고지를 점령했으나 20일 북한군의 역습으로 탈취당하였다. 그러나 25일 또다시 이 하사와 장병들의 역습으로 고지를 장악하였다.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을 치뤘다. 고지를 지켜내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영대 하사는 1951년 9월 3일 향로봉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에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대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5-ㅋ-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