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덕(李榮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702218
  • 전몰일자 : 19500712

공훈사항

이영덕 일등중사는 1929년 10월 20일에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정부수립 준비로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8년 3월 25일, 청북 청주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강원도 춘천으로 이동하여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하게 되었고, 당시 그는 사단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이영덕 일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춘천에 주둔한 제7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제7연대 는 북한군 침략 징후가 농후한 가운데 방어준비에 집중했다. 그들은 방어진지에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그리고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과 그 북쪽 춘천 분지를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는 공병(工兵)으로서 보병들의 장애물 설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했을 때, 이영덕 일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곧바로 주방어지역에 투입되어 장애물 설치와 폭파에 중점을 두고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연대 장병들은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했다. 또한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제7연대는 북한군의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6월 27일 오후 1시부터 춘천에서 철수를 개시하여 원창고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다시 홍천을 거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육본 명에 의거 충주로 이동하면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9일까지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영덕 일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7월 12일에 음성 지역의 장애물 설치지역을 국군 제1사단에 인계하던 중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이후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덕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5묘역-1198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ㄹ-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