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덕(이영덕)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5685
- 전몰일자 : 19530630
공훈사항
이영덕 중위는 1933년 8월 23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중위는 장교를 지망하여 전남 광주에 위치한 육군보병학교에 갑종 간부 제40기로 입교하여 교육훈련을 받고, 1953년 3월 1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선(화천저수지-펀치볼-향로봉-거진을 잇는 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1951년 11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 중이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개최되었고,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보강을 하면서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그러다 공산군 측은 11월부터 휴전회담의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시도로 전 전선에 걸쳐 국부적인 제한공격을 취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에서 다시 격렬한 진지쟁탈전으로 변했다.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2사단과 격렬한 고지쟁탈전을 치른 후,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사단은 1953년 5월 18일 제20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한 후, 6월 17일 제20사단의 좌측 전선을 인수하여 백석산 전방의 938고지 일대의 주저항선 방어에 임했다. 공산군은 하계공세의 일환으로 6월 25일 중공군 제179사단이 938고지를 공격했고,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항전했으나 결국 이 고지를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중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6월 3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덕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2면-96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ㅍ-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