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덕(李英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9801574
- 전몰일자 : 19530619
공훈사항
이영덕 이등상사는 1930년 3월 17일에 경상남도 고성군 거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하며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7월 20일,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공병대대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기동을 방해하거나 적 장애물을 개척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덕 이등상사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8월 중순, 제8사단은 낙동강방어선의 영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은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후 북한군을 추격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이 시기에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8사단은 12월 초에 화천저수지 남쪽의 경운산-추전리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신정공세와 2월 공세로 홍천·횡성 일대로 철수했다가 2월 20일에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제8사단은 4월 3일에 대구에서 전주로 이동하여 제11사단으로부터 호남지구 공비토벌 임무를 인수하여 5월 11일까지 완수했다. 이후 사단은 5월 19일에 충북 제천으로 이동했다가 25일에 강원도 인제·원통으로 이동하여 미 제10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그리고 사단은 8월 1일부로 서화 북방의 돈평-고성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제8사단은 유엔군의 작전지침에 의거 해안분지(펀치볼) 주변의 고지(노전평 부근, 1031고지 및 96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8월 9일부터 공격하여 9월 18일까지 3차에 걸쳐 공격전투(일명 노전평 전투)로 목표를 탈취했다. 그리고 사단은 11월 27일에 전주로 이동하여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을 1952년 1월 31일까지 수행했다. 그리고 3월 23일에 다시 전방으로 투입되어 서화 북쪽의 미 해병 1사단의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후 10월 19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수도사단의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했고, 수도고지(621고지), 지형능선, 271고지를 전초로 운용했다. 이후 전선은 한동안 조용했으나, 1953년이 되자 중공군 제201사단이 5월 13일부터 18일까지 271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고, 5월 27일부터 6월 12일까지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후에도 적들은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수시로 공격했다. 이영덕 이등상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방어진지 전방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6월 19일에 적의 공격을 받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덕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0449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5-ㅂ-06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